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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영감] 삼성 QLED 8K 광고: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편

by 반응하는 영감 2020. 3. 9.

https://youtu.be/pxdZaUsTMU8


COPY

 

(1492)

(바다 끝을)

(마주한 사람들이)

(말했다)

(이 곳 너머엔)

(아무것도 없다)

(2020)

(기술의 끝에)

(다다른 사람들이)

(말했다)

(TV가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은 여기까지라고)

(QLED는 말한다)

(더 먼 세상으로)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

(사전판매중ㅣ2020.3.3~3.16)

(QLED 8K)

(SAMSUNG)

 

 

03월 08일 광고 포스팅- QLED 8K

 

인용을 통한 카피 구절이 인상적이었던 삼성 QLED 8K 광고입니다! 1492년 바다 끝을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화두를 던지며 시작하는 광고인데요. 화면에 한 척의 배와 망망대해의 바다를 보여주며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1492년 바다의 끝을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교하며 2020년 기술의 끝에 다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반기를 드는 것이 바로 QLED 8K입니다. TV가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더 먼 세상으로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를 보여주겠다는 삼성의 포부가 박진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보는 소비자로 하여금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바다의 끝에 다다르고 그림자가 씌워지는데 그다음 컷에 검은 그림자가 걷히며 유유히 한 척의 배가 바다를 가르는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카피 더 먼 세상으로.. 그렇죠. 다들 한계라고 생각하고 그림자라는 어둠에 갇힐 때 삼성은 그렇게 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 그림자를 걷히고 나아간다는 거죠. 거기에 기술의 혁신이, 삼성만의 열정과 포부가 여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마지막 드럼으로 창~하고 마무리하는.... 엄청난 임팩트를 가져다주네요. 

 

1492년 바다의 끝을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다 이 광고에 쓰게 되었을까요? 

 

알고 보니 이 이야기 바로 콜럼버스의 이야기군요!

 

제노바 직조공의 아들인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함선을 타고 기니까지 갔다. 그러나 그는 전문적 항해가라기보다는 '설득력이 대단히 뛰어난 지리학 이론가'에 가까웠다. 1492년 그의 항해를 인가한 협정에 따르면 그는 '대양에서 섬이나 대륙을 발견하고 획득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아직 희망봉 항로가 발견되기 전이었으므로 그가 발견할 곳은 인도가 아니라 일본과 중국이었다. 그런 원정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졌고 유럽과 중국 사이에 대륙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콜럼버스는 1484년 포르투갈 왕에게 먼저 항해를 제안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거절했고 이후 프랑스와 영국도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 콜럼버스는 1488년 포르투갈에 다시 한 번 제안했는데, 이번에는 승낙을 얻었을지도 몰랐으나 마침 디아스의 성공에 세인의 주목이 집중되어 있었던 탓에 또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카스티야로 갔다. 여기서 그는 마침내 국왕과 부자들에게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1492년 8월 그는 팔로스 항을 출발해 '그림자의 바다'로 들어갔다. 현대의 연구에 의하면 콜럼버스는 그다지 첨단의 항해가는 아니었고 다만 세심하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단 카나리아 제도[북위 27도]에서 정서 방향으로 출발했다. 얼마 뒤 남쪽으로 방향을 틀자 마침 순풍이 불었다. 첫 항해는 운이 좋았다. 33일간 해초와 새들만 보면서 항해한 끝에 그는 바하마 제도의 외곽 섬에 도착했다[산살바도르는 북위 24도다]. 그가 보기에 이 섬들은 일본으로 이어진 다도해에 속하는 게 확실했다. [마르틴 베하임Martin Behaim이 1492년에 제작한 세계지도에는 바로 그렇게 되어 있었다.] 아시아의 동서 길이를 모른 탓에 일본이 중국에서 2400~25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보았던 마르코 폴로의 착오와, 지구의 크기를 실제보다 25퍼센트나 작게 잡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착오가 결합된 결과였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1만 600해리에 달하는 유럽과 일본의 거리를 불과 4500킬로미터로 보았다. 이제 그의 다음 과제는 일본을 찾는 일이었다. 콜럼버스는 계속해서 쿠바와 히스파니올라[지금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를 발견했다. 히스파니올라에는 약간의 사금이 있었으나 금목걸이나 금팔찌는 '원주민'과의 물물교역으로 얻었다. 좌초로 기함을 잃은 뒤 그는 귀국하기로 결정하고, 일부 인력을 현지에 남겨 기지를 세우고 금을 찾게 했다. 돌아오는 길에 콜럼버스는 더 북쪽으로 이동해 버뮤다의 위도[북위 32도] 가까이에서 서풍을 탔다. 유럽 부근에서 함대는 심한 폭풍을 만나 고초를 겪다가 가까스로 리스본 항구에 닿았다. 그를 심문한 포르투갈 측은 전에도 허풍을 떠는 이탈리아인을 본 적이 있었으므로 그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만일에 대비해 콜럼버스의 발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에스파냐도 무척 신중했다. 그들은 콜럼버스에게 2차 항해를 지시했다. 포르투갈보다 먼저 교황의 승인을 얻어 정착지와 항로를 독점하려는 심산이었다. 당시 교황은 마침 에스파냐인이었으므로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었다. 1493년에 출발한 2차 항해에서 콜럼버스는 도미니카, 버진 제도, 푸에르토리코, 자메이카를 발견했다. 1498년의 3차 항해는 자원자가 없어 죄수들 가운데서 인원을 모집해야 했다. 이번에는 더 남쪽까지 가서 트리니다드와 오리노코 강을 발견했다. 이 강은 유럽의 어느 강보다도 컸고 수량도 엄청나 대륙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게 해주었다. 이 대륙은 아시아의 일부로 보기에는 너무 남쪽이었다. 콜럼버스는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히스파니올라에 가보니 남겨둔 사람들은 벌써 반란을 일으킨 상태였다. 그는 훌륭한 총독도, 탐험가도 되지 못했고 결국 죄수의 신분으로 귀국했다. 1502년 한 차례 더 항해의 기회를 얻어 아메리카 본토의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를 발견한 뒤 1506년에 죽었다.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일화를 들며 삼성이 이를 따라가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네요. 그림자의 바다, 라는 것도 콜럼버스에게서 따왔나 봐요! 

 

소비자의 뇌리에 박히고, 실감 나고 강렬한 카피를 위해서 콜럼버스 일화로 화두를 던진 것처럼 광고에는 잡다한 지식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한 광고였습니다!

 

아.. 살 책이 하나 더 늘었네요!